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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한솔 개인전 : 둥세근상_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는 연습

노한솔 개인전 : 둥세근상_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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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2022.06.15~2022.06.30
  • 시간 13:00~20:00
  •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로 74장소보기
www.outhouse.kr
#무료전시 #문화 #예술
공지사항

작가: 노한솔

전시서문: 콘노 유키

디자인: 이은호

전시설치: 홍앤장 예술사무소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상세정보

: 면할 수 없이, 직면하는 관계에서 이미지와 의미가 돌아가는=작동한다는 것 노한솔 개인전 <둥세근상: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는 연습>

굴러가는 눈덩이는 처음에 사실 눈덩이가 아니었다. 눈송이는 우리 손에서, 손을 통해서 형태를 부여받고 부피와 무게를 갖게 된다. 작은 눈덩이를 언덕 밑으로 굴려 보낼 때, 크기는 점점 커지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간다. 자갈 같은 이물질이 여기저기 붙고 구()가 된 눈덩이는 지나간 자리에 오목한 길을 만든다. 여기까지, 이 과정은 굉장히 감각적이며 촉각적이다. (그런데) 소리를 빨아들이고 시야를 하얗게 덮은 이곳에서 우리의 감각 기관은 수축한다. 만져보고 굴려보고, 오목하거나 볼록하거나 알아보는 과정은 비-시각적이다. 그렇다고 촉각이라는 감각만이 유일하게 선예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촉각의 비-시각적인 성격은 오히려 비유를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유는 풍부함이 이미 조건 지어져 있다. "무엇을 닮았다"라는 표현이 원본과 복사본, 편집본, 가공본의 종속 관계를 드러내는 대신, "무엇과 같다"라는 말이 그렇듯이, 비유는 동일시의 관계를 내포하는데 그것은 비-시각에 근거하여 창출된다.

원본과 복사본 (기타 등등)의 관계로 본다면, 이번 전시 서문에 눈이 내린 언덕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작가가 그린 작품에 눈이 내린 언덕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촉각을 온갖 경험의 대변자로서 세워놓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 작품을 만져볼 수 있게 작가가 안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각 작업을 하는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지와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미지 하나에 달라붙은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하나의 의미(하는 바)를 어떤 이미지로/로서 받아들이는지, 그것은 마치 눈덩이와 같이 하얀 평면을 돌아간다=작동한다. 눈덩이가 처음에는 눈송이였던 것처럼, 우리가 구를 보거나 표현할 때, 사실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잊어버린다. 점은 선을 그려나가면서 밝고 어둠을 묘사하여 평면에 부피와 무게를 부여한다. 비록 평면상에서 납작해보일지라도, 비록 그 출발''이 작고 잘 보이지 않더라도, 점은 구와 같이,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어느 부분이 밝아지고 어두워질지 모르는, 움직임의 형태를 내적으로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 시리즈다. 문장을 구성하는 글자 배열이 앞로 바거나 이미지에 붙여진 문장이 그 이미지를 설명해주는 일의 작품은 의미가 이미지로/로서 인식되는 점을 보여. 예를 들어 <둥근세상>이라는 목의 작품은 면에 '둥세근상'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둥근세상''둥세근상', 우리는 이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의미를 이해하는데, 그 인식을 잘으로 지지 않는다. '단어 우월 효' 때문에 문자 서가 바경우에도 그 은 전달된다. '둥근 세상', '차금', '입춘대길'이라는 문구는 우리 일상에서 히 볼 수 있는데, 문장보다 시지를 은 이미지로 보고 수된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미지-의미는 오히려 /고정된 시지라는 확한 치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앞문자 배열이 바어도 분히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다. 문구가 처음부터 들어간 대상을 그리는 작업이 있는 한편, <손에 손>에서 이미지는 임의의 문장과 만. 이 작업에서 자처럼 작품을 수식하는 말은 앞서 본 '둥근 세상'이나 '입춘대길'큼 메시지가 정적/고정적이다. 문장은 기희망과 같은 정적인 이미지(이상)를 창출하는데, 맥락에서 손의 이미지는 다른 맥락으로 합류해서 수용될 일 없이, 장소와 시간을 문하고 내수 있는 이미지-의미가 된다.

또 다하나는 '버려진 정의들' 시리즈다. 작가가 작품으로 기록한 이미지는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경험에 기한다. 아지를 전에 은 사진이 정사진으로

보인 작가의 경험에 비, (時差)를 두고 을 때 과로부터 도출되어 의미가 변한다. 그때가 과거로 향하면서 일어에 없는 시, 그리고 과에서 출발할 수에 없는 시각에 비볼 때, 작가가 그린 이미지는 현가 만든 가소(可塑)적인 과거로 나타. 처음 을 때와 지금 봤을 때 이미지의 변없이, 보는 시각 의미(부여)가 변하는 일은 정의할 수 없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정의할 수 없다기보다 어떻게 정의/지도 모르는 상에 직면한 상태다. 두 가지 작품은 이미지에 의미가 붙여지는 속의 상태가 확실한 측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고정적이고 어떤 경우-시기와 장소를 문하고 발(發說)할 수 있는 경우나 과로(부터 시작해 과로) 되는 경우-할에만 실한 측면을 보여.

두 가지는 사실 개의 작업 방식이면서 동시에 ''의 움직임을 잘 고 있다. 구는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우리 눈에 평면적으로 보인다. 원의 납작함과 달리, 구는 동적이다. 치를 포하고 그 내부에 공통적인 규칙이 세워지는 것과 달리, 구는 높낮, 굴러가는 면들이 일정하지 않고 변할 수 있다. 작가가 ''이라는 표현 대신 언급하는 ''<사이로 나는 구><치열한 구> 같은 작품에서 실로 그러하듯, 이 드리워지고 명암이 구분되는 존재. 만 아니라 전시장 보일러실에 린 작품

목처럼 '시작과 '은 비-정적인, 다시 말해 시각적 과에 의미를 시작부터 정할 수 있고, 시각적 과의 시작에 의미를 미리 정할 수 있는 관계를 그린다. 비유는 다방면에 노출되어 있고 다하나에서 다하나로 표현을 굴려간다. 그런 와에 의미를 풍성하게 할 수도 있는 한편, 어떤 시지에 고정되어 구속수도 있다. 가만히 있으라고 멈춰 세우라는 말을 움직이는 구에 구하듯이 말이다.

히 우리는 원 대신 구를 눈을 감고서도 만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이 를 향하고 아를 향하고, 다시 같이 향할진 본다고 해서 모를 일이다. 면 원을 그리듯 둥글게 모여 손에 손 고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고 바지도 모. 모든 치가 면이 수 있고 언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모르고 구를 들고 있는 것처럼, 노한솔의 작업을 두 눈으로 직보면서 동시에 우리는 구의 그러한 안정한 상을 이미지와 언어 사이에 감각하게 된다. 전시에서 우리는 맥락이 다시 여지고/워지고 의미를 붙여주는 일 사이에서 의미와 이미지의 단단한 속에서 어나게 해주면서 동시에 그렇게 히는 것으로 이미지가 수되는 안정한 상을 마주한다.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면할 수 없이, 모든 경우에 직면할 수에 없는 구와 같이, 작가가 그리는/그려나가는 평면은 비록 만질 수는 없지만,
이미지와 의미 사이를 (다시) 감각적으로 다는다.

(: 노 유) 

주최사 정보
주최 별관
문의전화번호 01074741459
공식홈페이지 www.outhouse.kr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로 74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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