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마리 김선형 특별 초대전 - GARDENBLUE
일정 : 2021.10.5 ~ 2021.11.5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에포케Epoche
들뢰즈Gilles Deleuze는 “예술은 감각-정서의 구현”이라고 정의한 바, 즉, 예술은 감각의 구현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예술은 ‘내재성의 사유’와 관련한다는 것으로 들뢰즈의 철학은 표상・ 재현 체계를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회화란 재현할 모델도, 해주어야 할 스토리도 없으며 회화가 구상적인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추상을 통해서 순수한 형태를 지향하거나 추출 혹은 고립을 통하여 순수하게 형상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즉, 회화는 산이 굴곡된 힘이나 사과가 싹트는 힘 혹은 풍경의 열적인 힘 등을 보이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1]
이를 동양화의 제작 및 감상에 필요한 여섯 가지 요체 중 첫번째인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설명하면 대상이 갖고 있는 생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김선형이 2007년부터 15년째 줄곧 푸른색 수묵으로 그리고 있는 ‘Garden Blue’ 시리즈는 꽃도 새도 풀도 바위와 숲도 모두 푸른빛이다. ‘울트라 마린ultra marin’의 블루로 펼쳐지는 그의 정원은 온갖 자연이 분방한 푸른 선과 면으로 표현된 축소된 자연이다. 그의 푸른 정원 이미지는 그의 붓끝이 남긴 유희의 흔적으로 자연의 새로운 단면들이다. 자연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닌 김선형의 인식 속 자연을 감각하여 절대 자유로 펼쳐낸 마음의 정원이다. 상상에 의해서 의식이 마음껏 대상의 모습을 변경해보는 후설의 ‘자유변경’ 개념대로 김선형은 우리가 감각하는 자연을 에포케로 묶고 자유변경을 통해 자연의 보편성, 즉 자연의 본질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체의 자연을 푸른 수묵의 정원으로 가두었으나 구상보다는 추상의 자유에 취사선택 비중을 늘리며 순수와 본질을 추출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1] Gilles Deleuze, 『감각의 논리』, 하태완역, 믿음사, 2021
한국화에서 쓰는 먹의 검정[玄]은 우주만물의 이치, 법칙, 섭리를 내포하고 있는 자연의 모든 색채의 모색(母色)으로서 유채색이다. 서양의 물감은 빨강, 파랑 등 모든 색채를 섞으면 검정이 된다. 미국의 색면주의자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는 검정을 암흑이 아니라 빛을 담는 용기라고 생각했다. 검정은 빛을 품고 있는 가장 간결한 색채이며, 또한 빛의 현존을 드러내 주는 색채이다. 이것은 수묵의 현玄색을 색채의 모母색으로 간주하는 동양 미술과 동양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먹은 곧 연기이자 그을음인 즉 소멸되는 것을 가두어 만든 것이다. 그래서 묵은 오채五彩라 하여 모든 색을 담고 있으며 고로 먹색은 검은 색이 아닌 진함을 의미한다.
한편 먹의 현玄색은 색이 없는 무無의 상태이며 이것은 또한 아무런 감정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동양에서 색이란 세속적이고 현실적 욕망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먹의 현玄색이 가리키는 기본적인 의미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색의 제한, 절제로 금욕적인 정신성을 지향한 것은 20세기 초 서구의 추상 회화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러시아의 말레비치Kazimir Malevich는 『검정 사각형』을 1915년에 발표하면서 절대적으로 순수한 감성, 즉 무(無)에 이를 정도의 극한으로 절제된 감성을 강조했고, 몬드리안은 자연의 핵심을 나타내는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만으로 작업할 것을 주장하여 금욕을 통해 미적 가치를 도덕적 가치로 연결시켰다. 이렇듯 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이거나 수묵의 현玄색은 빛을 발하며 절제된 삶과 연결된다.
김선형은 현玄의 먹에 푸른색을 풀어 넣는다. 모든 색이자 무색이기도한 먹에 푸르디푸른 울트라마린ultra marin을 섞는다. 김선형에게 Blue는 먹색과 가장 많이 닮은 색이었다. 그것은 낮과 밤의경계의 색이거니와 푸른 하늘, 푸른 마음과 같은 선비정신이자 맑음의 상징성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색이었다. 그의 청정靑淨 수묵은 재현에 방점을 두지 않고 필선과 선염渲染이 여백을 채워나가는 수묵 모노크롬 회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청정수묵으로 표현된 Garden Blue는 현실에 존재하는 색채가 아니라 정신 속에 떠오르는 색채로서 작가의 인성이나 품격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그의 수묵은 그 출발에서부터 추상성을 함축하고 있다.
김선형은 묵은 물로써 그 농담을 조절하며, 청은 물빛이자 울트라 마린 물감 역시 수용성으로 자신의 그림은 붓과 물의 흔적이라고 이야기 한다. 청과 백의 미묘한 변조를 보여주는 평평한 모노크롬식 표현은 꽃과 나비, 새와 풀이 고스란히 담겼으되 3차원의 시각적 환영을 담지 않은 결코 사실적이지 않다. 푸른 수묵을 듬뿍 묻힌 붓이 종이에 닿으면서 하늘에 치는 그물처럼 선의 얽힘으로 형상을 만들어 나가거나 푸른 선염으로 채우는 조형미는 풍요롭지만 절제된 조형성으로 인해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말그대로 간결과 절제의 현玄에 담긴 청정靑淨 모노크롬monochrome이다.
본디 ‘파라다이스Paradise’의 어원은 고대 페르시아어 ‘pairi주변’와 ‘daeza담’의 결합에서 파생한 ‘파이리다에자pairi-daeza :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이다. 이 말이 그리스어 ‘paradeisos왕실 정원’ 다시 라틴어 ‘paradisus’로 발달되었다. 이 단어가 고대 불어로 유입되어서 ‘paradis천국, 이상향’가 되었고 영어의 ‘파라다이스paradise’로 정착되었다. 황무지가 거의 대부분인 사막 한 가운데서 담을 치고 물을 대고 나무나 꽃을 키웠으니 정원은 결국 ‘낙원’을 뜻하는 파라다이스의 근원이다. 한갓 자연의 축소판인 정원에서 낙원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그루의 나무도 한 포기의 풀도 없는 결핍을 보았던 자만이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낙원으로 볼 수 있다.
김선형은 그러한 맥락에서 불특정한 자연에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푸른 색 담을 치고 정원을 만들었다. 그의 Garden Blue에는 산수라는 의미에서의 산과 물 어느 하나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오직 산과 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생명들의 이미지만이 즉흥적으로 표현되었다. 대상의 재현을 피하고 기운생동하는 선묘로써 먹의 농담, 선염, 필세 등이 대상의 이미지와 결탁하여 조형적 형태로서 제시된 것이다. 일품逸品이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신神을 파악하여 형식을 초월하고 붓을 자유자재로 움직임으로써 작가의 자유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동양회화는 자연의 신神을 물物로서 취하는 것이다. 신神은 비가시적이지만 물物에 의해 가시화된 존재가 된다. 물物안에 신神을 집어넣는 것이 붓의 역할이다. 김선형의 작업은 스케치가 없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막그림이다. 이는 사물의 재현에서 벗어나 작가 신체의 일부가 된 붓끝이 스스럼 없이 움직이며 새롭게 만들어낸 자연의 단면들이자 목적 없는 현재함이다. 현대의 정신이 시대정신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전통의 기저 위에 있어야 한다. 그의 작업은 양식과 표현 모두 전통에서 벗어나 있지만 예술의 유희 방식은 전통적 의식을 따른다. 사라지는 연기를 먹으로 가두고 산화되지 않는 종이에 사라져 가는 모든 생생한 것들의 푸르름을 가둔다. 푸른 먹으로 소멸하는 것들을 펼쳐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상상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는 진리로 나아가는 급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험인 것이다.
■ 평론 차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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